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덴마크-노르웨이 왕국 (문단 편집) ===== 제1차 코펜하겐 해전 ===== 영국은 함대 건조를 위한 목재와 항해 물품들을 주로 스칸디나비아에서 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2차 무장 중립 동맹을 심각한 위협으로 여겼다. 또한 당장은 덴마크가 중립을 유지하고 있지만 장차 프랑스의 위협에 굴복할 경우 덴마크-노르웨이 함대가 프랑스의 편으로 돌아설 우려가 있었다. 이에 AD 1801년 초 영국 함대가 겨울 동안 얼어붙은 발트해가 녹아 [[크론시타트]]와 [[탈린|레발]]의 [[러시아 제국 해군]] [[발트함대]]가 활동을 하기 전에 서둘러 덴마크와 스웨덴의 함대를 먼저 상대하기 위해 나섰다. 만일 러시아 함대가 나설 경우 덴마크, 스웨덴의 함대를 합치며 전열함만 123척이나 되어 천하의 영국 해군도 고전할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영국 함대의 총지휘는 하이드 파커가 맡았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이집트 원정 중 나일 강 해전에서 승리하여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퇴로를 차단한 것으로 유명해진 [[호레이쇼 넬슨]]이 부제독이 되었다. 하이드 파커가 받은 명령은 덴마크를 위협하여 우선적으로 제2차 무장 중립 동맹에서 이탈시키고 다음으로 크론시타트와 레발의 러시아 함대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비록 신중한 하이드 파커는 단순히 발트해 봉쇄에 나서고자 했지만 호레이쇼 넬슨의 적극적인 설득에 따라 코펜하겐의 덴마크 함대에 대한 공격에 나서기로 했다. 당장은 역풍 때문에 스웨덴 함대가 나서기 힘들었고 또 다른 제2차 무장 중립 동맹 가맹국인 프로이센은 해군력이 미비하여 덴마크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AD 1801년 3월 30일 영국 함대는 덴마크와 스웨덴 사이의 좁은 해로를 통과할 때 덴마크의 해안포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최대한 덴마크 해안에서 멀리 항해했으나 운좋게도 스웨덴의 해안도 기지도 침묵을 지켰다. 다만 하이드 파커는 얕은 해역 때문에 호레이쇼 넬슨에게 출수가 얕은 전열함 12척과 함대의 모든 소형함을 맡긴 채 전진하도록 했다. 호레이쇼 넬슨은 코펜하겐의 덴마크 방어선이 굳건하다는 정찰 결과를 보고받자 좀더 약한 지점을 찾아 남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면서 4월 2일 제1차 코펜하겐 해전이 시작되었고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영국 함대의 총지휘를 담당해야 하는 하이드 파커는 흘수가 깊은 전열함를 이끌고 있기 때문에 전투에 참여하지 못했고 포연이 자욱하여 전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에 일단 후퇴하여 전열을 재정비하도록 명려하는 신호기를 올렸으나 정작 호레이쇼 넬슨은 예전에 입은 부상으로 보이지 않는 오른쪽 눈에 망원경을 대며 자신은 신호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능청을 떨었다. 그리고 전투를 이어갔고 영국 포병의 뛰어난 능력 덕분에 영국 함대가 승리하였다. 이에 덴마크가 어쩔 수 없이 강화협상에 나서면서 [* 사실 정확히 말하면 영국이 패전했다. 아무리 그래도 덴마크는 유럽국가였고. 홈그라운드에서 해안포, 육상포의 도움까지 받으며 결사항전 하는 나라를 함대 하나로 이길수는 없었던것. 그런데 화약 연기 때문에 전황을 알수 없었던 섭정왕자에게 사기를 쳐서 어거지로 평화협상을 이끌어낸것.] 제2차 무장 중립 동맹을 이탈하고 덴마크령 서인도 제도(지금의 미국령 [[버진아일랜드]])도 영국에게 양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